2008년 9월 14일 일요일

세상을 바꾼 빌 게이츠의 다섯 가지 결단

1결단: 하버드를 뛰쳐나가다

1973년 “빌‘은 1600점 만점의 SAT 시험에서 1590점으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 하였다.

위싱턴주 시애틀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 Sr." 어머니 ”메리 게이츠“도 그가 변호사의 길을 가기를 원 하였다. 그러나 중,고교 시절에 이미 컴퓨터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어릴적 친구 ”폴 엘런“과 함께 1975년 1월 한 전자잡지에 난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 기사“를 읽고 흥분 하였다. 그는 즉시 이 컴퓨터를 만든 MIST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 언어인 베이직“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 하였다. 이 제안이 계기가 되어 그는 MITS가 있던 뉴멕시코 알버쿠키로 가서 MS를 만들게 되었다.

2결단: 소프트웨어를 팔다

앞으로의 컴퓨터 시장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장악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IBM에 접근 하였다. IBM의 최고 경영자는 “존 에이커스”인데 빌의 어머니와 같은 자선단체의 회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다리를 놓게 되었다. 마침내 1980년 IBM의 관계자들이 그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들은 IBM PC에 사용될 운용체계(OS)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OS를 갖고있지 않았다. “먼저 팔고 뒤에 만들어라!” 이것은 그의 원칙이었다. 그는 IBM과 이야기를 나눈지 이틀 만에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사가 갖고 있던 Q=DOS 5만달러에 사서, 약간을 수정한 후 이 프로그램을 MS-DOS로 이름 붙여 IBM에 8만 달러에 납품하였다. IBM 이 이 프로그램을 무기한 사용하는 대신, 다른 회사에도 이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조건을 다는데 성공하였다. IBM 같이 저명한 회사에 납품한 프로그램을 마다할 회사는 없었다. 1995년 발간한 “미래로 가는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소프트웨어를 줌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그 후 컴퓨터 업계에서 잘 확립된 마케팅 기법이 되었다.”

3결단: 표준을 장악하다

그는 일찍이 전 세계 사람들의 책상 앞에 개인용 컴퓨터(PC)가 놓여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걸림돌은 각 회사가 만든 컴퓨터가 서로 호환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IBM을 기준으로하고 PC 운용체계를 MS 윈도우로 통일 시킨 것이다. PC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4결단: 인터넷 시장에 뛰어들다.

1993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웹사이트가 생겼고, 곧 이어 넷스케이프가 웹 부라우져를 내놓았을 때 그는 인터넷 시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1995년도에는 생각이 바뀌어, 그는 모든 회사원들에게 회사의 역량을 인터넷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공포하였다. 익스플로러 개발에 14억 달러를 들였고, 이는 넷스케이프 전체 매출에 7배나 되는 거액이었다. 윈도우 시스템에 익스플로러를 공짜로 끼워 팔게 되니 결국 넷스케이프는 문을 닫았다.

5결단: 거대한 자선 재단을 설립하다.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잇따른 반독점 소송에 휘말렸던 “전설적인 석유 재벌 잔 D 록펠러”와 유사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PC의 운용체계를 독점하여 재벌이된 그는, 록펠러 처럼 2000년 자선단체 “게이츠 앤드 멜린다” 재단(387억 달러 자산)을 출범 시켰다.

그의 회한!

인터넷 검색 시장에 등안시 하였다. 미디어 기는ㅇ에 주목하여, NBC와 공동으로 MSNBC를 설립하였다. 구글이 미국 검색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자기회사의 MSN은 10%에 그친 것이다. 그래서 “야후”를 인수하려하였으나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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